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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심병찬(CHIFFS 2008 공식 블로그 운영자)
참석: 백명기(충무로영화제 기술팀장)
        이해광(전 환경영화제 사업국장, 현 충무로영화제 기술팀 늦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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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영사사고 제로에 도전하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기술팀입니다.”

역시... 기술팀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통신보안, 국산품을 애용하자. 본부중대, 상병~ ***입니다.”를 연상케 하는 전화응대 애드리브라니. 그들은 영화제 최대의 지하조직답게(사무실이 지하 2층에 있다), 영화제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스탭들에게 탐문해보아도 좀처럼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업무는 베일에 싸여 있었으며, 남다른 유대감과 위계질서를 가지고 음지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것 정도가 사전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평소엔 지하 작업실에 주로 기거하여 마주치기 어렵고, 영화제 기간 중엔 상영관의 검은 어둠 속, 혹은 관계자 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영사실에 모습을 감추고 있어 그 실체를 대면할 수 없다는 공포의 기술팀. 하지만 그들이 영사하는 화면만큼은 마술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팀장님의 호탕한 허락만 믿고 뚜벅뚜벅 지하로 내딛는 발걸음엔,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영사실로 향할 때 그러하듯, 살짝 설렘이 묻어났다.


정직한 기술氏의 필름 검색 작업

심병찬(이하 심): 매일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 잘 알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줘 (말로만) 감사하다. 취재의도부터 설명하자면, 국내에는 충무로뿐만 아니라 부산, 전주, 부천 등 많은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들의 역사가 오래되면서 충성도가 높은 매니아 관객층도 두터워졌고, 그 저변이 일반 관객에게로 날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정작 매니아 관객조차도 영화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되고 있는 지 그 내막을 잘 알고 있진 못한 실정이다. 영화제에서 일하는 나조차도 기술팀 작업실에는 거의 처음 방문하는 셈이니, 일반 관객들은 오죽하겠나.

백명기(이하 백): 자랑이다.

심: 음... 빈손으로 온 것에 대한 보복성 멘트로 알겠다. 어쨌든...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그 영화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일반 극장 관람과는 다른 영화제만의 매력을 보다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 취지 설명은 생략하고... 기술팀이 담당하는 일은 뭔가? 영화제에서 상영할 필름을 검색하고 상영을 책임진다는 정도만 막연하게 아는 정도다. 담당 업무에 대해 대략 설명한다면?

백: 프로그램팀에서 수급된 프린트를 받아 기술팀에 넘겨주면, 일단 상영이 가능한 상태인지 검색을 통해 상태를 점검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정보-화면 사이즈, 사운드 포맷 등-을 파악해 영화제 기간 중에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영사실에 보내서 영화가 잘 상영될 수 있게 준비를 한다.

심: 정말 대략적인 설명, 감사하다. 일단 궁금한 것 하나. 필름에 사운드 부분이 함께 붙어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나는 사운드는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이해광(이하 이): 그거 모르는 사람 많다.

백: (직접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돼 있다. 지금 이건 녹색인데, 검정색으로 된 것도 있다.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놓은 필름은... 아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였고나.


필름에 수록된 다양한 정보들. 양쪽에 한 프레임당 4개씩 뚫려있는 구멍을 퍼포레이션(Perforation)이라고 하는데, 영사기의 톱니에 이 구멍이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이: 여기가 스크린에 보여지는 이미지 영역이고, 여기가 사운드를 재생하는 영역이다. 이미지 영역에 스크래치가 있으면 스크린에 비가 오는 거고, 사운드 부분에 손상이 있으면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는 거다. 이런 손상이 없어야 온전한 상영이 가능한데, 이 부분을 검색하는 게 필름 검색 과정이라 보면 된
다.

심: 그럼 이 많은 필름을 라이트박스에 얹어 놓고 일일이 눈으로 검사하나?

백: 모든 스크래치를 프레임 단위로 시각 검사를 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단 스크래치 부분은 촉각 검사를 기본으로 한다. 보통 고속버스 기사들이 착용하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필름을 돌려보며 손의 감촉을 통해 손상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퍼포레이션이 손상되면 영사기에 걸려서 사고가 발생하니까 이런 부분들을 일차적으로 검사하게 되고, 발견된 지점은 상영 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일정한 보완을 해준다. 하지만, 이 촉각 검사를 통해 모든 스크래치를 다 발견해낼 순 없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심: 아무래도 촉각에 의존하다 보니 그런 한계가 발생하는 건가?

백: 이미 말했듯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화면사이즈 같은 기본정보다. 각 프레임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영상자료원 같은 곳에서 필름 복원을 목적으로 검색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영화제에선 시간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 보통 2시간짜리 영화를 검색하는데, 상태가 좋은 필름일 경우, 5-6시간 정도 걸린다. 촉각 검사만 해도 이 정도인데 일일이 프레임 단위로 시각 검사를 하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거다.

이것이 바로 촉각 검사 과정.


백: 정리하자면, 촉각 검사를 기본으로 하되, 시각 검사를 병행한다. 일단 필름 한 편의 검색을 끝내고 나면 그 필름을 다시 영사기에 감아 돌려보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 영사과정을 다시 촬영해서 스크리닝본을 만들게 되는데 이건 자막팀에 넘기기 위한 거다. 왜냐하면, 자막팀은 영화제에서 상영이 확정된 작품의 프리뷰(DVD나 VHS 등 해당 영화의 내용이 담긴 매체. 실제로 수급된 프린트의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자막팀 취재에서 보다 상세히 설명될 예정이다-편집자 주)를 받아 번역 및 자막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프리뷰가 실제 프린트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막팀은 프로그램팀에서 받은 프리뷰와 기술팀에서 넘긴 스크리닝본을 비교해가며 실제 영사 시에 사용할 수 있는 최종 자막을 만들게 된다.

심: 아... 모든 필름을 일일이 영사해서 그걸 또 촬영까지 한단 말인가?

백: 기본적으로 자막 작업이 필요한 작품은 모두 스크리닝 촬영을 한다. 이 중에서 한국영화라든가 간혹 한글자막이 입혀져 있는 필름의 경우는 스크리닝 촬영 과정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만약 필름 검색 과정에서 자막과 관련해서 걱정되는 부분이 발견되면 다시 영사기로 돌려본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런 경우다. 보통 영화 한 편은 필름 5-6권 정도로 되어 있는데 때때로 프린트를 보내는 측에서 필름의 순서를 잘못 기재해서 보내기도 한다. 이 필름을 상영하는 영사 기사들은 각 필름 캔에 적힌 순서대로 필름을 쭉쭉 이어 붙여 상영을 하게 되는데, 만일 그 순서가 잘못 적혀있다면, 영화는 엉뚱한 순서로 상영이 되는 거다. 때문에 영사 과정을 통상적으로 생략하는, 앞서 말했듯 한국 영화나 한글 자막이 입혀져 있는 프린트의 경우, 필름 검색 과정에서 리더필름을 점검해보고 이상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영사를 해보는 거다.


리더필름(Leader Film). 필름 각 권의 제일 앞부분이며, 각 권의 순서와 해당 필름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내부의 필름이 손상되지 않도록 전체를 감싸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왼쪽에 보이는 원반 형태의 깡통이 필름 캔. 오른쪽이 필름박스. 필름박스마다 라벨이 붙어 있어 필름의 기본 정보들이 적혀있다.


이: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팀에서 넘겨받은 영화 상영시간은 180분인데, 필름은 7권밖에 안왔다, 그럼 이칠에~ 십사, 140분밖에 안 되는 거니까 프로그램팀에 다시 연락해서 나머지 분량을 추가로 받을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검색이 끝난 필름들을 상영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권을 하나씩 이어 붙여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120분짜리 영화를 상영하려면, 필름 6권을 이어 붙여야 하는 거다.

백: 보통 필름을 이어 붙여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한데, 간혹 프린트 수급과정에서 필름을 이어붙이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이어붙이지 말고 영사기 두 대를 이용해서 상영하는 것이다.

심: 그런 까탈스런 요구는 또 왜 하는 건가?

백: 보통 영화 상영을 위해서 필름을 이어 붙일 때는, 각 권의 앞부분에 붙어있는 리더필름 부분을 잘라준 다음에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상영이 끝나고 나면 다시 리더필름을 붙여줘야 하는데, 옛날 방식에 익숙한 분들-지금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은 이 과정에서 필름을 한 프레임 더 잘라내 버린다. 이런 식으로 상영이 100번 이뤄지면 프레임 100개가 날아가는 거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름을 보내주는 쪽에서는 아예 필름을 이어붙이지 말고, 영사기 두 대에 나누어 상영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보존가치가 높은 프린트의 경우, 이런 요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심: 듣고 보니, 필름 검색 작업이라는 게 만만치가 않다.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 일이다.

백: 그렇기 때문에, 기술팀은, 자막팀 다음으로 많은 인력이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해진 기간 내에 많은 수의 프린트를 검색하려면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기술팀엔 특별한 팀원도 있다. (영사기를 가리키며) 저기 있는 순애씨. 쟤 이름이 순애다. 윤강로(영사기를 돌려 스크리닝 작업을 담당하는, 영화제 경력이 오래된 팀원-편집자 주)의 절친.

백: 애인이지, 애인.

심: 그럼 저 영사기는 윤강로 씨가 소유한 장비인가?

백: 아니다. 대여한 거다.

심: 아, 그러면 매번 새로운 장비를 대여할 때마다 그 장비에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나누는 건가?

이: 그렇지. 쟤는 저래 봬도 2년차다. 잘하면 몇 년 뒤에 충무로영화제 기술팀장 할지도 모른다.


순애씨와 윤강로 형님의 다정한 한 때.


심: 듣고 보니 왠지 므흣한 느낌이 드는 영사기다. 자, 그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검색작업을 좀 빨리 할 수 있는 노하우는 없나?

이: 선수들, 에이스들이 있지. (마침 옆을 지나가는 팀원을 가리키며) 저기 에이스 지나가네.

백: 특별한 요령은 없다. 에이스라 할지라도 다른 팀원에 비해 속도가 조금 붙는 정도다.

심: 결국 에이스란 경험치에 따라 손맛 같은 게 예민하게 단련된... 생활의 달인 같은 건가?

백: 그렇다. 그래서 프로그램팀에 자꾸 필름을 빨리 받아달라고 하는 건데, 그쪽에선 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심: 그런 건가. 그래서 아침 9시에 칼같이 출근하고도 매일처럼 자정을 넘겨 일하는 건가.

백: 여기 기술팀 작업실에 작업대가 6개밖에 없다. 그리고 에이스라고 해봐야 신참보다 조금 빨리 작업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결국 정해진 여건 속에서 하나하나 다 거쳐야 하는 공정이 있기 때문에 오래 할 수밖에 없다. 필름을 빨리 휘리릭~ 감아서 점검하거나 시간을 쪼갤 수도 없는 거고... 요령이 있을 수 없다.

심: 뭐랄까, 굉장히 정직한 작업이다.

이: 그렇지. 정직한 작업이지. 영사기가 원래 빨리감기가 안 된다. 검색하는 필름이 2시간짜리면 그냥 2시간을 지켜봐야 하는 거다. 진짜 정직한 작업이지.

백: 예전에 모 영화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처음 트는 영화의 경우, 관계자들이 스크린 테스트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영사실에 들어와서 시작하는 부분을 잠깐 보고 나서 특정 부분의 사운드 체크를 해봐야 하니 빨리 돌려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영사기는 빨리감기가 안 된다고 했더니 놀라더라. 그런 일도 있었다.

이: 게다가 영사기는 한 번 세팅해 놓으면 옮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간혹 영화제 처음 하는 친구들은 저거 옮겨서 다른 데서 상영하고 다시 갖다 놓으면 안 되냐... 이런 소릴 하는데...

심: 영사기는 한 번 세팅하면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나?

백: 뭐, 비디오 같은 건 옮겨서 그냥 틀면 되지만, 영사기는, 같은 1.85:1 비율의 스크린이라 하더라도 상영되는 공간의 영사거리나 스크린 크기에 따라서 렌즈도 다 바꾸고 해야 한다. 사운드 잡는 것도 선 하나 꽂아서 되는 게 아니고 채널 분리가 돼야 하니까... 옮기는 건 불가능이라고 봐야 한다. 일반 극장의 경우, 35mm 영사기를 옮길 일은 없으니까 별 문제가 없는데, 야외상영의 경우 영화제 전에 계획을 다 세워서 상영 1-2일 전에 모든 세팅을 마치고 테스트까지 끝내야 한다. 그런데 영화제 기간 중에 갑자기 장소를 바꿔서, 오늘밤엔 저기서 함 해볼까, 이런 건 안 된다는 거다.


오해는 화면비를 타고

이: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화면이 살짝 사다리꼴로 나오는 경우. 일반 극장의 스크린은 완전 평면이 아니라 가운데가 살짝 들어가 곡선으로 휘어 있다. 그런데 영화제에서는 시민회관처럼 영화 상영을 전문으로 하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상영을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거더라. 나도 부천에 있을 때, 이 사실을 잘 모르고 기술팀 구박도 하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더라.

백: 그 문제는 이런 거다. 보통 영사기가 위치한 곳이 스크린보다 높아서 영사각이 생기기 때문에 스크린이 살짝 누워있어야 하고, 또 스크린의 각 귀퉁이에는 영사되는 빛이 도달하기까지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멀기 때문에 스크린이 안쪽으로 들어간 곡면으로 휘어있어야 하는 거다. 이런 게 갖춰지지 않은 일반 시민회관 같은 데서 상영하다 보면 당연히 스크린이 사다리꼴이 되거나 각 귀퉁이 부분은 포커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심: 아... 그럼 우리 영화제는 대부분 전문 상영관에서 진행되니까 이런 문제는 별 걱정이 없겠다.

백: 꼭 그렇진 않다. 작년에도 화면 사이즈 때문에 말이 많았는데... 일단 정리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극장에는 화면 사이즈가 보통 두 종류다. 가로 대 세로 비율이 1.85:1과 2.35:1. 이 비율을 맞추는 방식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1.85:1의 스크린을 갖추고 있는 극장에서는 통상적으로 커튼을 이용해서 스크린 윗부분을 살짝 가리는 방식으로 2.35:1의 화면비를 맞추는데 이걸 탑마스킹(top-masking) 방식이라고 한다. 반대로 평상시 2.35:1의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는 극장은 좌우를 가려서 화면비를 1.85:1로 맞춘다. 사이드마스킹(side-masking) 방식이다. 요즘 멀티플렉스관이 대세다 보니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나눠서 상영관 수를 늘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특정 상영관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멀티플렉스들이 이런 문제를 얼마쯤은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특히 대한극장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예전 대한극장에 대한 향수(알다시피, 대한극장은 70mm 와이드 스크린으로 상영한 <아라비아 로렌스>를 끝으로 멀티플렉스 대열에 합류했다-편집자 주)가 작용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 화면비와 왜곡, 화면 손실 문제는 그림과 함께 설명이 잘 되어 있는
이곳에서 확인하시길.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심: 뭔가 공부를 많이 하고 가는 느낌이다. 보람차다.

이: 잘하면 내년에 스크리닝 매니저 하겠다? 내가 볼 때 내년에 기술팀 올 것들 많아. 정직한 팀이라니까.

백: (잠시 딴 길로 새는 분위기에 진중히 찬물을 부으며) 이 같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렌즈를 새로 맞춰서 상영하면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순 있다. 하지만, 1.85:1과 2.35:1은 국내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해당 영사기를 갖추고 있고 줄곧 이 장비를 활용해서 상영해 온 것인데, 갑자기 영화제가 렌즈를 새로 맞춰서 상영을 해버리면 우리가 그들을 뭔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 온 집단처럼 대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제가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신 1.37:1이나 1.66:1 렌즈는 우리가 상영조건에 맞춘 것으로 상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문제가 어느 정도 보완될 것이다.


필름 상에서 보는 화면비.



정확하지 못한 렌즈 영사 선택에 따른 Screen Image의 손실.



심: 다행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게시판 항의 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백: 그게 또 그렇진 않다. 1.37:1이나 1.66:1의 화면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렌즈로 상영을 하게 되면, 이번엔 스크린의 좌우가 남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보이는 화면은 제대로 된 화면비를 구현하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좌우에 스크린이 남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 극장에서는 스크린이 꽉 차게, 즉 위아래가 조금 넘치게 상영함으로써 좌우가 남는 문제를 피해가기도 하지만, 이러면 화면 위아래는 잘리는 거다. 작년에도 스크린 좌우가 남는 문제로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심: 올해는 이런 부분에 대해 안내를 꼼꼼히 잘 해야겠다.

백: 이 문제는 일일이 안내하기도 어렵다. “이번 상영작은 1.66:1 비율로 상영하기 때문에 스크린 좌우가 좀 남을 겁니다. 제대로 된 화면비로 상영하는 것이니 걱정 마세요.”, “이번 작품은 1.37:1 비율로 상영합니다. 좀 더 많이 남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다 안내하긴 어렵지 않나.

이: 아무리 제대로 된 화면비로 보여준다 하더라도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스크린 좌우가 남으면, 뭔가 시각적으로 불편해하고,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극장들이 스크린에 약간 넘치게 영사하는 것 아니겠나.

백: 화면비에 대해서는 또 재미난 얘기가 있다. 옛날 영화의 경우 이런 사례가 많은데, 감독이 자신의 미학적 판단에 근거해서 1.85:1 비율로 영화를 찍고자 해도 촬영에 사용되는 35mm 필름의 비율은 4:3(1.33:1)이기 때문에 애초에 화면의 위아래가 가려지도록 카메라를 세팅해서 찍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촬영하다 보면 아무래도 빛을 받는 양, 노출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찍을 땐 그냥 4:3 비율로 찍고 상영할 때 위아래를 가려서 1.85:1로 상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내가 옛날에 <개인교수>를 보니 위에 막 붐마이크가 보이고 그러대. 그래서 난, 얘들이 아무래도 에로영화를 만들다보니 노출에만 신경을 쓰고 촬영은 대~충 했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상영 때 위아래를 가려줘야 되는데 그걸 안 해서 붐마이크가 보인 거다.

아아... 추억의 <개인교수>. 날림 에로영화가 아니었더란 말이냐.



백: 그래서 이런 문제도 촉각 검사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필름을 하나하나 영사해보고 붐마이크가 보이면 해당 필름에 체크를 해서 1.85:1로 영사해달라고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심: 하는 일이 몹시 에너자이저스럽게도 백만 스물 한 가지다. 고되지 않나?

백: 솔직히 말하면, 기술팀이 하는 작업은 필름 수급일정에 맞춰서 진행되기 때문에 오늘처럼 필름이 안 들어오는 날은 그냥 이러고 논다.

이: 하루 종일 멍때리고 있는 거지. 이게 더 힘들다. 은근히 피곤하다.

백: 이런 날은 좀 일찍 퇴근하기도 한다. 대신 필름이 몰리는 날은 정신없이 일해야 하고, 그렇다.

심: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신체의 리듬을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듯, 내 작업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소외요, 괴로움이겠다?

(난데없는 잘난 척에 ‘얘, 뭥미?’ 분위기가 조성되며 일동 침묵).


2008/08/29 - [영화제의 속살] - [영화제의 속살] 공포의 기술구단을 가다. #2 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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