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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31 [포럼] 신성일의 재조명, 배우 신성일 포럼


안녕하세요, PEA 입니다-
(지금 제 모습.. 으응?)

오늘은 충무아트홀에서 있었던
"최초의 무비스타, 마지막 로맨티스트 배우 신성일 포럼
" 에 다녀왔어요

사실 회고전이라 하면 대개 감독의 회고전이 주를 이루었는데요,
이번에는 한 배우의 회고전이 열렸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리포터는 평소에 한국 영화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번 포럼을 통해 그 중 한 단면을 본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답니다.
자, 그러면 어떠한 얘기가 오고갔는지 한번 보실까요? 고고! 고고!

산뜻한 초록색 책자를 받고 입장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님의 사회로 이루어 진 포럼
(손석희의 100분 토론처럼 깔끔한 진행이 인상적이었네요. 대단히 시크하신 교수님 >_<)


김종원 평론가님은 포럼을 시작하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신성일이란 배우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갖고 있는 배우이다."
그 말인 즉슨
?   →   !
     과연 배우일까?             그럼에도 배우이다
        
        


        
발제자이신 김종원 영화평론가님의 말씀



[기존의 비평]




왼쪽부터 신강호 대진대 영화과 교수님
           조관희 영화평론가님
           정중헌 서울예대 부총장님


 신성일이 활동했던 60~70년대 한국영화들은 거의 대다수의 작품들이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작품의 시나리오를 가져다가 그대로 토씨 하나도 바꾸지 않고 번역하여 그것을 토대로 나름 한국식으로 조금씩 고쳐가면서 찍었다고 하네요. 그러니 신성일님이 나온 주요 청춘영화도 일본 영화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발제자이신 김종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10년간은 신성일에 대해 비판적인 접근을 해오셨다고 해요. 그래서 "외세에 뿌리받은 사이비 청춘사" 라고 직접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또한 엄청난 인기로 1년에 50여편의 작품을 찍었던 그는 환산해보면 1달에는 3.4편 정도의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 되는데요. 이것은 외국 배우들도 평생에 걸쳐 찍을까 말까한 횟수이죠.

한 작품을 찍다가도 바로 다음 작품의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바쁜 생활속에서 제대로 작품이나 인물의 캐릭터를 연구하고 촬영에 돌입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초기작들을 보면 연기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죠.

 지금은 동시녹음을 통해서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후시녹음이 보편화되어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 성우가 배우의 입모양을 따라 목소리 연기를 한 형태의 영화들이 상영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성우들이 몇 명의 인기배우들을 전담하여 목소리 연기를 했죠. 그러니 관객들이 보기에
 


신성일의 타고난 마스크 + 타고난 육체미 + 당대 최고 성우의 목소리



이 3박자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신성일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목소리 없는 배우다 라고 하기도 했답니다.

포럼이 진행되는 컨벤션 센터의 모습


[스타 신성일의 재조명]


                     
           위에서부터 정진우 영화감독님
                      송낙원 프로그래머님
                      곽영진 영화평론가님


신성일에 대한 이미지는 배우보다는 스타에 가깝습니다. "스타였지 Actor는 아니었다" 란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 그리고 앞으로 그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배우 신성일을 재조명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큰 배경부터 살펴보죠. 60~70년대 한국 청춘영화의 부흥기 이전인 5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청춘영화가 유행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루돌프 발렌티노나 알랭 들롱같은 유명 배우들도 이 당시에 등장한 청춘영화의 배우들이죠. 하지만 한국의 청춘영화는 외국의 그것과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전후 산업화시대에 등장한 신흥 중산층의 반항을 그리던 외국 영화들과는 달리 (말 그대로 이유없는 반항) 한국 청춘영화의 주인공들은 빈부격차로 좌절을 겪었던 세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낙후성에서 벗어나서 성장하고 싶은 욕구, 성취를 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던 젊은이들에게 이런 영화의 주인공들은 희망을 가져다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일본영화에서 그 틀을 가져왔지만 그 영향력은 청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또 어쨌든 그런 황금시대를 겪으며 한국 영화계의 40%가 신성일-엄앵란 콤비 덕택에 먹고 살았다는 정진우 감독님의 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영향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되었던 연기력도 초기작에서는 그닥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숙해집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영화를 찍으면서 스스로 연기를 체득한 것이죠. 또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유현목 감독님의 62년작인 <아낌없이 주련다> 라는 작품을 할 때는 연상녀와의 사랑을 연기하는데 비슷한 설정을 갖고있는 외국영화를 참고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직접 연필로 대사를 메모하고 장면을 그려가며 공부를 했다는 일화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대에 기라성같은 선배 배우들이 있었지만 잠시 주춤한 사이에 혜성처럼 치고 나온 그는 (그의 성공 요인중의 하나는 때를 잘 맞추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거의 10년간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유일무이한 배우 중 하나입니다. 당대에 그의 위치에서 경쟁할 만한 다른 배우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배우들이 못해서는 아닙니다. 뛰어난 배우들도 있었지만 그만이 왜 독보적인 존재였는지는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겠군요.)

이렇게 6분의 토론자분들과 발제자 김종원 평론가님의 말씀으로 포럼은 진행되었는데요,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느낄만큼 흥미로운 말씀들이었습니다. 포럼답게 질의 응답 시간에서도 날카로운 질문이 오고 갔답니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은 유지나교수님이 인용하신 말로 마치려고 합니다.

"한 사회의 역사는 그 사회가 만들어낸 스타 연구로 새겨볼 수 있다"
(말씀하신 학자이름을 못받아적었네요 죄송ㅠ)

한 사회가 스타를 택했다는 것은 그 속에 사람들의 일상, 불만, 사고 등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치듯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신성일이 왜 그 시대의 상징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는지는 얼마든지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저의 포스팅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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