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서버 상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8.29 이 영화들을 부탁해. _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새들의 노래 4

훔쳐 본 영화가 맛있다.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정녕 이리도 쫀득하게 비쳤단 말이더냐...

미안한 얘기지만,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정식 상영에 앞서 먼저 보게 되었다. 반 년이 넘게 메일을 보내고 초청장을 보내도,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던 그 영화를 드디어 봤다. 어느 고마우신 분의 수고로, 세계 어디서든 올해는 상영을 허락해 줄 수 없다던 그 담당자에게서 이틀 만에 답장이 오더니, 어느새 디지털프린트로 우리 손에 들어온 거다.
 
스크리닝 테스트가 있는 날, 내심 벼르고 있던 나는, 기술팀장의 동선에 주목하고 있다가 야심한 밤 드디어 따라 붙는 데 성공했다.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밤 12시, 불은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고대신전 지구라트처럼 생긴 타이렐 사가 보이고, 2019년 디스토피아 LA의 야경이 펼쳐지자, 난 몹시 오금이 저렸다. 솔거가 그린 나무 마냥, 윈덱스로 스크린을 말끔히 닦아낸 듯, 라식 수술로 미끈하게 잘라낸 다시 태어난 동공으로 보는 듯, 저리도 선명한 블레이드 러너를 호젓하게 앉아 보고 있다니. 커다란 눈동자에 반사되는 도시의 야경이 저리도 선명했던가? 몇몇 추가된 장면들, 새끈하게 광낸 장면들, 그리고 반젤리스의 음악. 그래 맞어. 매트릭스도, 공각기동대도, 제5원소도 다 이 영화를 보며 오금을 저리던 자들이 만든 거였다구!

야근의 고통도, 점프컷으로 다가오는 영화제의 압박도, 내 다시는 영화제를 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도,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 새벽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하여, 어둡고 습한 곳에서 이 영화의 은밀하고 기이한 매력을 탐하던 자들이여, 다시 지친 몸을 움직여 이 영화를 위한 제의에 동참하시게나. 이 영화를 통하지 않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나니......



영화 <새들의 노래>를 부탁해.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새들의 노래>

1968년, 낡은 아버지 세대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알렸던 혁명의 시기. “아버지 X새끼 넌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어!”의 정신은 새로운 영화를 향한 열정으로 이어진다. 하여, 당시 칸 영화제를 습격했던 쟁쟁한 인물들의 면모와 “모든 영화는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라는 그들의 선언에는 뭔가 절박한 심정이 묻어나는 듯하다.

이번 ‘칸 영화제 감독주간 40주년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건네받은 올리비에 페레 '칸 영화제 감독주간(이하 감독주간)' 집행위원장과 올리비에 자한 감독의 글에도 이러한 절박함과 진정성이 드러나 있다. 일년 동안 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보고 그 중에서 20편 정도의 영화를 선정한다는 이 젊은 집행위원장은 여전히 새로운 영화와 새로운 미학에 목 마른 듯 하고, 실록 다큐멘터리 <40X15>를 통해 칸 영화제 감독주간 40년을 되돌아 본 올리비에 자한 역시 외형적으로 성장한 유수의 영화제들과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여전히 감독주간의 정신과 필요성은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 우리 영화제를 방문하는 그들에게 진정성이 깊이 우러나는, 40년은 명함도 못 내민다는 충무로의 맛집들을 소개하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 지는 좀 의문이다. 

또 한 명의 감독, 알베르 세라. 스페인 출신의 이 젊은 감독은 (눈치를 보아하니) '감독주간'이 그 미래를 상당히 기대하는 감독인 듯하다. 첫 번째 작품으로 '감독주간'을 찾은 그의 영화 <기사에게 경배를>은 국내 영화제에서도 소개된 바 있으며, 두 번째 작품 <새들의 노래> 역시 올해 '감독주간'에서 상영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회화적 전통과 영화적 전통 사이, 그리고 평면의 스크린을 통해 시공간을 고찰하는 패기만만한 이 감독의 작품은 관객에게 낯설고도 낯선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우연히 그의 영화를 보고, 우연히 그를 만나고, 그에게 대뜸 초청의 의지를 발현한 우리는, 솔직히 그가 우리 영화제를 방문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갖은 우여 곡절을 거쳐, '감독주간' 집행위원장과 함께 우리 영화제를 방문하기로 한 알베르 세라. 미래의 거장 혹은 주요한 작가가 될 싹이 농후한, 미래가 기대되는 이 젊은 감독을 우리가 좀 더 환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낯설고 예민한 영화, 전혀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그의 영화가 외롭지 않도록, 새로운 영화에 목마른 자여, 이 감독의 GV 객석을 가득 채워주시면 안되겠니?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