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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9 공포의 기술구단을 가다. No.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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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검색대의 어지러운 풍경. 정직한 작업의 고단함이 느껴지는가.



2008/08/28 - [영화제의 속살] - [영화제의 속살] 공포의 기술구단을 가다. #1
 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영사사고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심: ;;;; 음... 스위스 시계마냥 딱딱 맞추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필름 수급 일정을 계획해서 맞추고 할 순 없나?

이: 이렇게 보면 된다. 일반 극장에서 <배트맨: 다크 나이트> 상영하는 걸 예로 들면, 그들은 영화 하나를 백 번 정도 틀 때, 영화제는 백 편이나 되는 영화를 한 번에 몰아서 트는 거다. 그러다보니 수급일정을 딱딱 맞추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영화제가 상영하는 작품들은 일반 상영작들과는 달리 프린트를 구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어렵다.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지도 모르는 옛날 필름을 찾아서 일일이 판권자 찾아내고 하는 게 힘든 과정이다. 최신작이라 해도 아직 국내 개봉을 하지 않은 프로모션용이라 배급사에서도 어느 영화제에 필름을 넘길까 고민할 수 있고 그러면 다시 실갱이를 하고 해야 하니... 이래저래 프린트 수급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심: 일반 극장 상영과는 다른, 영화제만의 고충이겠다.

이: 또 있다. <다크 나이트>를 상영하는 일반 극장의 영사기사는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다크 나이트> 한 편만 틀면 되지만,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사기사는 10일간 최소 30편은 틀어야 한다. 하루 4편씩 일주일만 잡아도 30편이지 않나.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지치는 일인 거다. 그렇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면 사고 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아무래도 계속 필름을 바꿔서 상영해야 하니까.

백: 아까 말했듯이 영화 한 편을 상영하려면 필름을 합본해서 틀어야 하지 않나. 흥행이 좀 되는 영화는 보통 한 달 정도 극장에 걸려 있는데, 그 영사기사는 한 번 필름을 편집해놓으면 한 달을 그대로 가는 거다. 일 년이면 열두 번만 편집하면 된다. 반면, 영화제 기간에 일하는 영사기사는 하루에 편집을 4번은 해야 한다. 일주일이면 28번 편집해야 하니 짜증나는 일이다. 게다가 영사기사는 영화제가 자체적으로 고용할 수 없다. 이건 영사기사들 사이의 불문율 같은 건데, 한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영사기는 다른 사람이 와서 함부로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텃세 같은 거다.

심: 조금 민감한 문제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영사사고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작년에 <서스페리아>같은 경우는... 영사사고는 아니고 다른 문제인 것 같은데...

백: 아니다. 영사사고 맞다. 기술팀에서 잘못한 부분이다. <서스페리아>는 디지베타로 들어왔는데, 필름이 아닌 디지털 포맷 같은 경우는 기술팀에서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 다른 업체에 나가 검색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영화제 사무실에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잠깐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이유야 어찌됐던 간에 그 과정에서 검색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다. 하지만, 나머지 영화들, <THX 1138>이나 <서바이벌 게임>의 경우는, 팬 앤 스캔 버전(TV 상영을 위해 가로로 긴 화면비로 제작된 오리지널 프린트를 좌우를 잘라내 4:3 비율로 맞춘 버전-편집자 주) 프린트를 상영한 것이 문제였지 상영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팀과 기술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리얼 호러의 체험을 안겨주었던... 서스페~리아


심: 따지고 보면 모든 업무가 마찬가지겠지만, 상영과정과 직결된 일을 다루는 기술팀의 경우, 특히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많고. 인원을 보강한다거나 영화제 준비기간을 더 넉넉히 가지는 것 등이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비엔날레 방식이면 괜찮지. 비엔날레는 작품선정이 다 끝난 상태에서 발표를 하지 않나. 상대적으로 준비과정이 여유롭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조직에서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개인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일반 극장의 상영방식과 영화제가 가장 다른 점은, 프린트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도 한정된 기간 동안 한정된 횟수만 상영한다는 조건으로 최소한의 대여비용만 지불하는 방식 아닌가.

(작품 선정 및 수급 과정에 대한 내용은 프로그램팀 취재에서 더욱 소상히 공개된다. 기대하시라~)


음지에서 쏘아올린 작은 빛

심: 기술팀 스탭들은 계속 영화제 일을 하시는 분들인가.

백: 바로 그 인력 문제가 기술팀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영화제에서 일하는 기간이, 팀장을 제외하고, 길면 2개월 짧게는 한 달이다. 그러니 일 년 동안 충무로영화제 일만 해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거다. 영화제를 계속 돌면서 일하는 분들도 몇몇 계시지만 그 사람들도 결국 자기 살 길을 찾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경력자, 전문 인력 인프라가 쌓일 수 없다. 붙잡고 싶어도 보장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 영화제 기술팀에서 일했던 경력이 다른 곳에 써먹을 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봉이고.

심: 왜 영화제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인가.

백: 유사 직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같은 곳이 그나마 유사한 분야인데, 그런 데는 사람을 별로 안 뽑는다.

이: 장기적으로 보면 영화제에서 아카이브 같은 것을 운영하는 게 대안이라고 본다. 부산이 그렇게 시도하는 것처럼. 상시적인 영화제 업무가 마련되면, 그에 따라 고용도 창출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전문 인력 풀이 확보될 여지가 생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팀장도 내년에 일을 하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팀원들은 오죽하겠나.

백: 이런 조건들 때문에 영화제 일을 했던 경험이 자신의 전망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단순히 알바나 좋은 경험 정도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심: 여러 가지 힘든 조건 속에서도 뚜벅뚜벅 작업해 온 결과물들이 곧 관객들을 만나게 될 텐데, 실제 극장에서 상영될 필름들을 하나하나 정직하게 검색해 온 당사자로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백: 우리가 아무리 정직하게 작업을 했어도, 일단 사고가 나게 되면 관객들에게 봐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어쨌거나 무조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열심히 재밌게 보고 즐겨달란 말 외엔.

심: 정직한 작업이지만,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정서가 팀원들 사이에 공유되는 면이 있어서 그런지, 기술부는 유독 연대감도 강하고 독특한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백: 팀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술팀원은 다른 부서 사람들과 소통할 일이 별로 없다. 업무 연관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화제 기간 중에는 상영관에 들어가면 혼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끼리라도 잘 뭉치자는 분위기가 있고, 일부러 슬로건도 하나 만들고 재밌게 일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저리도 유쾌한 슬로건에 그토록 촉촉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니...


이: 기술팀 늦둥이(이분의 학번이 기술팀 막내의 태어난 해와 같다고 한다)로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참 재밌는 점이 있다. 기술팀 작업의 최종 결과물은 스크린에 영사된 빛의 형태로 구현되지 않나. 빛은 ‘밝음’인데, 정작 기술팀은 ‘음지에서 일하면서 음지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만든 결과물은 ‘빛’인데 자기들은 음지에만 있어야 되는, 밝은 데서는 필요가 없는 그런 존재인 거다. 밝은 데서는 영사를 못하니까.

백: 캬~ 저 말빨 어쩔 거야~

심: 자메이카 볼트 선수가 내 가슴을 향해 100m 전력질주 하듯, 확~ 와 닿는다.

이: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한다’지만, 기술팀은 음지에서 일하면서 계속 음지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거지(정확히는 국가안전기획부, 그러니까 그 무시무시한 안기부 시절 모토이다-편집자 주)

백: 사고라도 터지면, 더~ 이렇게~ OTL


니들은 계속 음지에 있어주면, 안 되겠니~?


심: 자, 마지막 질문이다. 이건 우리 영화제의 공식 질문이기도 한데, 기술팀에게 ‘영사사고’란?

백: 허걱... 똥 쌀 때 말고, 유일하게 똥꼬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허허허.

심: 너무 단답형이면 곤란하다.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질문인데... 음, 그럼 유사한 질문 하나 더 하겠다. 우리 영화제 컨셉이 ‘고전의 재발견’이지 않나? 기술팀에게 ‘고전(영화)’란?

백: 힘들다, 그냥... 허허허.

심: ......

이: 고전 영화가 정말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지 않나. 그런데 내가 검색하면서 본 고전 필름은, 복원작이 아닌 이상, 만지기 싫은 필름이다. 보통 영화 한 편 검색에 5-6시간 걸리는데, 고전 영화는 필름 상태가 안 좋아서 그 시간이 확 늘어나니까 그렇다. 또 기술팀 철칙이 한 번 검색한 필름은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술팀에게 고전이란 정말 피하고 싶은 필름일 수밖에. 괜히 권수가 작다고 섣불리 골랐다가 남들 퇴근하는데 나는 검색기 돌리고 있어야 하는 거다. 완전 복불복이다. 게다가 고전 영화가 중심이다 보니 이런 손상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른 영화제는 기껏해야 한두 가지 ‘회고전’스러운 섹션만 해당되는데, 우리 영화제는 고전영화가 중심 컨셉이지 않나.

심: ‘고전은 힘들다’?

이: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있다.

심: '고전 영화와 함께 하는 낭만'을 '재발견'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예상보다 긴 시간, 인터뷰에 정직하게 임해줘 감사하다. (역시 말로만.)

백: 이건 뭐... 스크리닝 매니저 교육하는 줄 알았다.

이: 내년에 기술팀 오겠는데?

일동: 허허허허허허~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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