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니, 질문이 잘못 되었군요. 우리는 어떻게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 그곳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켜보기, 공간이 축적한 시간[歷史]을 상기해보기 등등. 뭔가 두루뭉술하다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보지요 : 당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속살을 지겨워하지 않은 채 무엇으로 권태를 흥미로 갈음합니까? 시간을 되새김해보기[歷史]는 어떨지요. 9월의 첫 열흘을 딱 분질러 고전에서 풋풋한 신예 감독들의 영화까지 섭렵하면서 추억을 만들어보심은 어떨는지요. 이 충무로에서 말입니다.

라온제나와 이백의 시선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충무로를 들여다보렵니다. 영화와 영화인의 거리인 이곳을, 두루뭉술하고 알듯 모를 듯한 시선으로요. “2010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를 언젠가 다시 떠올리실 때, 이곳에 깃든 당신의 추억이 감미롭기를 바랍니다.

Ⅰ. 중앙시네마 또는 <카사블랑카>



Here's looking at you, kid.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카사블랑카>(1942, 한국개봉연도 1957), 릭의 대사

작년 3회까지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상영관 중 하나였던 중앙시네마가 지난 5월 31일 문을 닫았습니다. 깊은 무대와 차임벨, 높은 2층 객석과 복잡한 공간 구조를 가졌던 고색창연한 극장이 76년의 상영을 마치고 박수 속으로 퇴장했습니다. 원로 배우 전영운 씨는 중앙시네마에 대해 이렇게 회상합니다.

“중앙극장에서 <카사블랑카>를 상영했어. 그때가 인천 살 때였는데 아침 일찍 명동으로 오는 거지. 그러고서 한참 줄을 서. 일단 들어가면 하루 5회 중 4회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입석으로 봤지.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우린 영화 공부를 그렇게 했어.”

<카사블랑카>의 한국 개봉 시기는 1957년 3월입니다. 1939년생인 전영운 씨의 젊은 날, 미래 영화인들의 열정을 더욱 부채질했던 곳이 바로 중앙시네마였습니다.


Ⅱ. 세파(世波) 또는 중앙극장

…… 따라서
미국은 우선신탁관리제를 실시하여
그간 조선 민중이 독자적 통치를 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진행할 것을 제창한다.
미 국무성 극동국장 J.C Vincent,
1945. 10. 20,
미국외교정책협의회 연설 중

더 이른 시기, 1946년 1월 1일. 해방공간의 좌익과 우익의 대립을 예술인들도 피해가지 못했을 그 당시, 빈센트의 연설은 그간의 대립은 뒤로 하고 전국연극인대회를 열어 신탁통치 절대 철폐 결의에 이르도록 합니다. 바로 중앙극장에서 말입니다. 미로 같은 복층 로비에서 근심 섞인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 더 이른 시기, 해방 당일 날 중앙극장에서는 친일 연극이 상연되었다는 것이지요. 극단 조선연극사는 해방 전날까지 공연하던 작품인 <아내의 길>을 이튿날까지 올리다가 관객들의 야유와 조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의 대동아 전쟁을 찬양하고 비행기를 많이 만들어야 미국과 영국을 무찌를 수 있다는 전형적인 어용 목적극’(유민영, 『한국연극운동사』)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공의 조건에 고여 있는 공기를 다시 물질로 환원하는 것이 텍스트의 역할입니다. 소통을 위해 일정한 체계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텍스트고 문학입니다(롤랑 바르트). 영상 언어이든 문자 언어이든 연극과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이든 간에 시대정신을 무엇으로 규정할지, 공간의 질감을 무엇으로 빚어낼지 그것은 다시 사람의 문제입니다. ‘중앙극장’에 고여 있던 이러저러한 세파에 대한 상상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리는군요.

아, 하지만 이제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사의 중요한 한 장이 되었던 것도, 원로 배우의 한 평생을 이끈 원동력이 된 영화 학교였던 것도. 오늘은 중앙시네마를 위해 옛 당나라의 시인처럼 한잔 한잔 또 한잔[一杯一杯復一杯](李白, 山中對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배사는 “당신 스크린에 건배를.” 정도가 어떨지.

_굳게 닫힌 문. 아직도 진열된 <크레이지>, 브로셔가 눈길을 끈다


_관객들이 남긴 작별인사 혹은 감사의 인사


Ⅲ. 혼마치[本町] 또는 충무로

형태들,
특히 사회적 축출이면서도 영적 재통합인
엄격한 분할의 그 주요한 형태는
아주 상이한 문화 속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띠고서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미셸 푸코, “광인들의 배”, 광기의 역사 중

충무로의 일제강점기 때의 이름은 본정本町으로 흔히 ‘혼마치[本町], 본정통本町通’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경성부 지명사전>에서 의하면 현재의 동과 같은 행정구획단위가 정(町)이었고, 현재 일본의 행정구역체제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근본이 되는 길, 즉 ‘한 도시의 중앙에 있어 중심이 되는 거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중심가’로 풀이됩니다. 종로구와 용산구 사이에 가로로 길게 자리한 중구의 모양이 함께 상기되기도 하는군요. 그렇지만 기실 ‘본정통’은 서울의 진고개 일대를 가리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전국의 각 도시의 중심가를 ‘본정통’이라 하며 부산, 청주, 경주, 익산, 군산, 목포, 예산 등 거의 모든 도시의 중심가를 이처럼 불렀다고 합니다. (‘본정통’, 네이버 지식 검색).

통通은 ‘한 구역을 이루는 공간의 일정한 범위’(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로 정식행정체계명이었다기 보다는, 3개 내지 4개의 음운을 발음하기 선호하는 한국어화자의 발화습관에 따라 -의미가 통하기도 하거니와- 덧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경성의 본정통은 도심지 남쪽을 동서로 관통하며 퇴계로와 명동로 사이를 일렀으며 이것이 지금의 ‘충무로忠武路’입니다. 1946년 10월 1일 이순신李舜臣의 시호를 본 따 현재의 도로명이 된 이유(충무로, 두산대백과사전)에 대해서는 현재는 MTV와 Nick의 사옥인 명보극장 앞 충무공 생가 터를 알리는 빗돌에서 확인합니다. 해방 직후 중구 인현동1가 건천동이 이순신의 생가로 밝혀지면서 혼마치란 보통명사를 벗고 충무로란 고유명사를 획득하게 된 것이지요.


Ⅳ. 극장전 또는 폐관극장전



조금 싸다가 한 며칠 차려 먹으면 좋겠다 싶게
상가 음식은 이 세상 마지막 맛인 듯 맛나고
상가를 지키는 이들의 말소리는 생전에 가장 달고
이병률, 어두운 골목 붉은 등 하나, 바람의 사생활 중

명동과 충무로를 잇는 길, 제일병원과 백병원의 사잇길을 걷다보면 명보극장과 중앙극장을 만나게 됩니다. 명보극장의 운영기간은 1957년에서 2008년 4월 30일, 중앙극장은 1934년에서 2010년 5월 31일입니다. 이들은 대한극장과 더불어 제1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상영관이었습니다. 이 두 극장이 문이 닫게 됨에 따라 올해부터는 관객 여러분의 동선에 많은 변화가 있겠습니다.

다양한 규모의 ‘~문화’라는 간판을 단 인쇄소와 현상소가 밀집된 것을 보면 충무로 지역에 5,000여개의 사업장이 모여 있다는 (주)상진문화 김경호 이사의 말이 저절로 실감이 됩니다. 역시 폐관된 극동극장 뒤 인현시장의 작은 골목골목에도 소규모 인쇄소가 한집 걸러 한집,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도시의 시간은 골목마다의 어지러운 전선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극장과 극장 사이 혹은 병원과 병원 사이, 인쇄소와 인쇄소 사이. 낡았거나 새로운 또는 낯설거나 익숙한 또는 사라졌거나 여전한 또는 높거나 낮은 건물들의 앙상블이 지금 충무로의 모습입니다. ‘클러스터cluster’라는 용어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 공간 속에서 다양한 산업이 얽혀온 시간[歷史]이 텍스트가 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발견, 복원, 창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던지는 키워드가 충무로를 방문한 당신에게 의미 있는 풍경이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롤롤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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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뿌리뽑힌그자리에서 2010.07.23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속살을 지겨워하지 않은 채 무엇으로 권태를 흥미로 갈음합니까?",

    당신의 글은, 권태로운-일상으로 시작해, 2010년의 '본정통'인 충무로가 바라보는, 과거의 '시간'속으로 저를 흘러 들어가게 했습니다. 권태와 허무가 만날법도 했건만, 당신이 쓴 것처럼, 아, 모든 것은 사라져버리고 말았건만, 내가 그렇게 일상 위에서 냉소해버리려고 한 순간,

    당신은 다시, 그 시간을 빌려, 무너진, 극장-공간을 지나, 그 공간 탓에 결코 놓칠 수 없는 시간을, 공간 속에 가득 다시 메우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저에게 일상을 놓치지 않도록 해주는군요.

    당신의 말처럼 2010년 충무로 영화제는 그 막을 올렸지만, 또 막을 내릴 영화제(際)도 있는 것,

    시간은 표표히 지나가버리고,
    이제 곧 사라져버릴 공간만이 남아있지만,
    고구려의 옛 터를 본 옛 시인처럼, 위대한 자연 앞에 무너지고 스러져버리고 말 인간의 운명을
    한탄할 저를 발견하지 못한 까닭은,
    아마도 끝없이 시간 속에서 공간을 읽어내고, 공간 속에서 시간을 읽어낼
    당신'들' 덕분일 것입니다.

    비단 충무로의 어느 길가위에 서 있는 극장만이 극장이겠습니까,
    어느 길가 위에서, 끝없이 이야기되어지는 것이, 진정한 극장아니겠습니까,
    공간은 이제 당신의 글 속에 다시 생명을 얻었는것을요,
    폐관극장전도 좋지만, 차라리 이사한 극장전 어떻습니까,
    "극장전"이 더 이상 그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라든가, 내용때문이 아니라,
    그, 사라진 극장 자체, 다시 출몰할 극장 자체에 대해 담론한다는 것, 그것때문에
    재상영된다면
    그것 또한 재밌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이 인용한 롤랑바르트의 말, '시공의 조건에 고여 있는 공기를 다시 물질로 환원하는 것이 텍스트의 역할입니다',를, 이런 의미로, 제 일상에 붙잡아두어도 되겠습니까?

    저도 제 일상의 내용을 꽉꽉 채워놓는 것이 아니라
    제 일상, 자체에 대해 묻는
    그런 질문을 해보렵니다.

    권태였던 공기를 물질로 환원하여,
    당신의 글을,
    나의 권태를 채워줄 도구들을 찾아주는 평온한 글이 아니라,
    당신은 왜 권태롭느냐,고 묻는, 권태 그 자체와 만나는
    조금은 가시돛친 글로 읽으렵니다.

    그럼, 라온제나님,
    또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

  2. Park Kim Benjamin 2010.08.13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보극장, 예전에 교회 선생님 손 잡고, 영화 보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네요.. 없어졌다니 기분이 이상해요..

  3. from21 2010.08.17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붙혀놓은 포스티잇을보니 영화관이 단순히 건물로만 있었던게 아니었군요~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8.17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공간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겠죠? ^^ 소중한 영화공간입니다~

  4. Yuns 2010.08.19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앙극장 없어져서 넘 아쉬워요.. 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