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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7 [고전의 재발견] No.02 유년의 빛과 그림자: 시네마 천국 (2)

우리 모두의 시네마 천국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주말마다 명화극장을 보겠다고 어떻게든 밤 12시까지 깨어있던 열두 살의 기억. 나를 스쳐지나간 그 수많은 영화중에 유독 마음의 중심을 차지한 영화가 단 한편이었다는 것.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고, 그때마다 설레고 기뻤다는 것. 그 모든 감동이 극중 알프레도 역을 맡은 ‘필립 느와레’ 할아버지의 별세 후 더 깊고 더 크게 내 마음을 향해 요동쳤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유년의 것이며 모두의 추억이니까. 게다가 내가 열두 살 꼬마였을 때 친할아버지로 착각할 만큼 좋아했던 필립 느와레 아닌가.

2006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혹여 모두의 시네마 천국이 함께 세상을 떠나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신 시네마 천국> DVD를 찾아야 했다. 내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하여,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이의 가슴속에 ‘시네마 천국’을 심어준 필립 느와레를 기억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의 영화음악: 토토와 알프레도

* 토토와 알프레도의 행복한 순간들

<시네마 천국>의 O.S.T. 가운데 하나인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토토와 알프레도Toto and Alfredo를 들을 때마다 내 심장 박동수는 틀림없이 증가했다. 지금 당장 영화의 막이 오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이 시작될 것만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혹은 내가 하얀 백지 위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술술 써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흥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지금 나는 Toto and Alfredo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다시금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려고 음악에 마음을 집중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나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숨겨두기 위해. 철없던 유년 시절의 방대한 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소박해질 만도 한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한 사람이 어떤 꿈을 꾼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꿈조차 꾸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왼쪽) 젊은 시절 공부하지 못한 알프레도가 뒤늦게 시험을 치르며 토토에게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한 동안 이 영화에 빠져있을 때는 눈을 감을 때마다 온통 ‘토토와 알프레도’를 생각했다. 알프레도가 ‘토토’를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 내 귓가를 울리는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같았다. 알프레도가 토토를 애타게 불렀던 그날은 그가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는 날이었다. 토토는 예전에 영사 기사인 알프레도에게 영사실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한 적이 있다. 그는 영사실 일은 토토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영사실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그날은 오히려 토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처지가 되었다. 알프레도가 토토와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치게 된 것이다. 토토는 나이 지긋한 알프레도가 시험지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때 토토가 제안을 한다. 영사실 출입 허용! 꼬마 토토와 알프레도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 후 토토가 영사실 일들을 하나둘 배우면서 그들의 우정도 쌓여간다. 알프레도와 토토가 일하는 극장 ‘시네마 파라다이스’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였다. 전쟁 후의 가난 그리고 고단한 생활로 몸과 마음이 일그러진 사람들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위로와 쉼을 얻는다는 것은 지금의 극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극장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소중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가난해서 끼니조차 때우기 힘든 그들이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돈을 낸다는 것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문화보다 밥이 중요한 시절, 영화표 살 돈이 없어서 극장 밖에서 사운드라도 듣기 위해 귀 기울이던 시절, 감히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 시절의 영화는 지금의 그것보다 더 큰 의미였으리라.

성장의 통과의례: 사랑과 꿈
꼬마 토토는 마을사람들의 잃어버린 꿈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피해 숨어드는 안식처,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영사실에서 자라난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달려와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려주는 토토와 가만히 귀 기울이는 알프레도는 완벽한 친구였고, 스승과 제자였고,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꼬마가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될 때까지, 언제고 영사실에 그들 둘이 함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강하면 강할 수록 영화 속 그들은 단호한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 토토와 엘레나의 러브 스토리는 훗날 알프레도가 토토를 넓은 세상으로 떠나보내기 위한 모티브가 된다. 사실 토토의 간절한 프러포즈에 감동한 엘레나는 토토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엘레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토토가 더는 엘레나를 만날 수 없게 되고, 그 사이 입영 통지서를 받아 군대를 간다. 토토는 여전히 엘레나를 잊지 못한다. 성장의 통과의례처럼 토토는 뼈아픈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다. 알프레도가 그런 토토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알프레도                                        * 제대 후 알프레도를 찾아온 토토

“아주 옛날에 어떤 국왕이 공주를 위하여 연회를 열었다. 그런데 국왕의 호위병사가 공주가 지나가는 걸 보았지. 공주의 아름다움에 병사는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일개 병사와 공주의 신분 차이는 엄청났지. 어느 날, 드디어 병사는 공주에게 말을 걸었어. 공주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야. 병사의 말에 공주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공주는 병사에게 이렇게 말했지. “그대가 100일 밤낮을 내 발코니 밑에서 기다린다면 기꺼이 당신의 여자가 되겠어요.” 병사는 쏜살같이 공주의 발코니 밑으로 달려갔고 하루, 이틀, 10일, 20일이 지났어. 공주는 창문으로 항상 지켜봤고 그는 꼼짝도 안 했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었지. 새가 똥을 싸도 벌한테 쏘여도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어. 어느덧 90일이 지나고 병사는 온몸이 마비되고 탈진 상태에 이르렀어. 그리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눈물을 억제할 힘도 잠을 잘 힘도 없었던 거야. 공주는 줄곧 지켜보았어. 드디어 99일째 밤. 병사는 일어서서 의자를 들고 가버렸어. 그게 끝이란다.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마라. 네가 이유를 알게 되면 내게 가르쳐 주렴.”
_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대사

열두 살 때, 나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좋았다. 알프레도가 답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갖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토토도 그러했을 것이다.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다림이라는 긴 외로움을 견뎌냈고 ‘사랑이구나’ 싶은 순간 그 사랑을 잃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토토는 만약 100일째 날 공주가 약속을 어긴다면 그 병사는 가슴이 찢어질 듯 슬퍼서 견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가버린 것이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 때문일까. 내 생각은 토토와 다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장 순수함을 간직한 결정체이며, 어떤 잣대로도 좀처럼 평가하기 어렵다. 왜 사람들은 그 순수한 감정을 자꾸 시험하려는 걸까, 만약 어떤 상대가 당신을 사랑하는 순간 동시에 당신도 그 상대에게 마음이 동한다면 어느 한 쪽이 상처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랑하는 동안만큼은 그럴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하지 않으면 훼손되는 것이 사랑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사랑하는 상대를 100일 동안 문밖에 세워둘 수 있을까. 그 병사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실망 때문에 가버린 것이다.

*오랜만의 외출                                                           * 알프레도와 토토의 작별 시간

토토가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알프레도는 “떠나거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생각하지 마.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을 사랑하렴. 네가 어렸을 때 영사실을 사랑했듯이”라고 말하며 토토를 떠나보낸다. 이렇게 사랑의 상처는 토토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로마로 간 토토는 영사실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해 영화감독으로 성공하지만 30년 동안 단 한 번도 고향을 찾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머니로부터 알프레도의 부음을 전해 듣는다. 사실 이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알프레도의 부음으로 인해 고향을 찾은 중년의 토토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가장 행복했으나 실연의 상처와 범벅되어 잊고 싶기도 했던, 말 그대로 유년의 빛과 그림자가 존재했던 과거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변질되거나 훼손되는 것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
나는 오랜 동안 깨끗하게 정리된 축소판 <시네마 천국>만을 알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30여분의 내용이 잘려나간 축소판만을 기억할 것이다. 오리지널판 <신 시네마 천국>은 토토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첫사랑 엘레나와 재회하는 장면을 살려냈다. 살려냈다기보다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는 편이 맞겠다.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시네마 천국>을 감명 깊게 봤다면 <신 시네마 천국>을 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타인의 의도된 사랑의 상처와 중년이 되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 ‘영화와 꿈’이라는 <시네마 천국>의 순수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리지널판이 궁금했지만 보지 않았었다. 알프레도를 향한 어릴 적 순수가 흐트러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알프레도의 부음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알프레도가 이 세상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토토의 유년뿐 아니라 나의 그것까지 덩달아 마주하고 싶었다. 알프레도와 토토와의 다정한 모습을 가능한 한 지켜주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의 삶에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 그 둘 사이에도 그런 모습이 곁들여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토토는 실연의 상처로 더 큰 세상을 만났고, 하마터면 자그마한 마을 영사기사로 살았을 인생이 인기 영화감독으로 뒤바뀌었다. 허나 그것의 전제 조건은 ‘사랑의 상실’이었다. 토토는 엘레나 이후 어떤 여인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꿈과 사랑 가운데 꼭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때때로 짓궂게 선택을 강요한다. 긴 세월을 작은 마을의 극장 영사기사로 살아온 알프레도가 토토를 떠나보낸 것은 인생의 그런 양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때문에 토토가 그를 영원히 원망할지라도, 알프레도는 토토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들어야 했다. 중년의 토토는 극장에 앉아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바라본다. 추억의 장들이 넘어가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의도적으로 혹은 시간에 쫓겨서 잊어버려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이 기적처럼 살아나기에 토토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나에게 고전영화란 이런 것이다.

*숨어서 영화를 보는 어린 토토

                            * 추억의 장을 되살리며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중년의 토토

나는 토토와 함께 자라났다. 영화를 눈으로 볼 수 없을 때는, 녹음기에다 녹음해서 토토와 알프레도의 목소리를 귀로 보았다. 눈을 감으면 드디어 알프레도의 자전거에 탄 토토가 보였다. 알프레도가 토토를 부르는 소리, 토토가 알프레도를 부르는 소리, Ennio Morricone의 음악! 이 모든 것들이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혹은 이제는 불필요하다 생각해서 꽁꽁 묻어두었던 아련한 옛기억들을 불러낼 것만 같다.

30년 만에 되찾은 토토의 과거는 다른 누군가의 유년시절일 수도 있고 청년시절일 수도 있다. 부디 그 모습이 토토가 그랬듯 슬픔과 기쁨의 두 가지 면모를 모두 지녔으면 하고 바라본다. 타인의 잘못으로 단 하나의 사랑을 잃었다 하더라도 그 기억이 미련과 후회가 아니기를 기도해본다. 고전영화가 아름답듯, 지나간 우리의 시간 또한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by pEPe+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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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비 2010.08.12 0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2. beomjinkim 2010.08.13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네마천국... 감명깊게 봤었죠, 아직도 여운이 남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