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5 당선작 그 마지막 리뷰는, 이길남 님이 [나의 첫 번째 영화 관람기] 부문에 응모해주신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먹먹한 영화로 기억될, <라스트 콘서트> 입니다.
나는 공부를 참 못했다.
공부를 너무 너무 못해서 고등학교 시험인 연합고사에도 떨어져서 간신히 간신히 야간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처음 야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는 많이 창피하고 부끄러웠고, 야간고등학교를 다리는 애들은 다 깡패고, 날라리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학교 근처 골목 어귀를 지날때면 언제나 그 날나리들이 나의 돈을 뜯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늘 무서웠고, 돈도 차비만 가지고 다녔던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 그런것은 금새 잊을수 있는 그런 나이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 못한 것이 그리 부끄러운것이 아니였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조금 더 당당할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어째든 내가 야돌이(우리끼리는 이렇게 불렀다)인것이 부모님께는 너무 죄송스러웠다. 낮에 집에 있을때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당시 핸드폰은 커녕, 삐삐도 없었던 때라 같은 야돌이 끼리연락 할때면 벨을 한번 울리고 끊고, 두번울리고 끊고...이런식으로 암호를 정해서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그 야돌이 생활에서도 중상위권이 아닌 중하위권이였던 등수인 나에게 대학에 떨어진것은 어찌보면 당연한것이 였다. 공부에는 자신이 없었고, 고등학교 연합고사에도 떨어지고 지금까지도 무슨 시험이든지 나는 한번도 합격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시험이라면 으례 주눅이 먼저 들기까지 하다.
이런 내가 당연히 재수는 안하겠다고 했었고, 몇달 집에 있다 보니 생각이 바꿨다. 당시 가장 친했던 부랄친구들도 한 명만이 대학을 진학했었고, 나머지는 모두 재수를 했다. 나 혼자 집에서 노는게 재미 없었던것인지 정말 대학을 들어가고 싶었는지는 사실 지금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어째든 나는 집에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던 나에게는 당연히 연극 영화과를 가야했다. 당시 나에게는 영화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존재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말을 들은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길남아 제발 뜬구름 잡지 마라"
하고 연극 영화과는 안된다고 극구 말리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나에게 제안 한 것은 단식이였다.
이틀간 단식을 하면 재수를 시켜주겠다는 것이였다.
늘 우유부단 했었고, 학교 성적표 란에는 언제나 "온순하나 주위가 산만함" 이라고 쓰여진 성적표를 매년 보셨으니 내 의지가 못 미덥기도 하셨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나는 쌍팔년도에 난생 처음으로 이틀간 단식을 하게 됐고, 그 이후 연극영화과를 목표로 재수를 했었다.
그때는 영화가 아무런 이유없이 너무 좋았고, 내가 언제나 영화에 대해 떠드는것이 대견해 보일정도였다. <스크린>잡지를 창간호 부터 사봐왔었고, 그후 <로드쇼> <키노>까지 거의 모든 영화잡지는 한부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서점을 매번 들락거리기도 했던 나는 영화라면 자신이 있었다.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에 영화얘기만 나오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질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라스트 콘서트>는 당시로서는 정말 특별한 영화였다.
어릴적 내가 생각하는 영화들은 성룡 영화가 최고였다.
<사형도수>가 너무 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문앞에서 혼자서 "영화보여주세요~~ 영화보여 주세요~~"를 혼잣말로 반복하기 까지 했었다.
그런 나에게는 유명한 영화들은 모두가 지루한 영화였다..
<러브스토리> <벤허><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런 모든 영화들은 볼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런걸 보는 사람들은 "저렇게 재미 없는 영화들을 왜 볼까?"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다. <라스트 콘서트>도 당연히 지루한 영화였고 그 지루한 영화를 우연히 TV에서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눈물 바다였다. 단언컨데 내가 지금까지 봐온 영화중에서 "그때" <라스트 콘서트>만큼 슬픈 영화는 없었고, 그것만큼 눈물을 쏟은 영화도 없었다.
당시 감독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를때, 루이지 코지라는 감독이름까지 외웠고, 그 영화의 히로인인 여주인공 스텔라 역을 한 "피멜라 빌로레시"는 항상 입안에 뱅뱅 달고 다녔었다.
계단에서 떠나간 남자 리차드를 찾아 헤메다가 포기하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을때 자기 집앞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담배불 없어요?"하고 당돌하게 묻던 앳된 십대 소녀의 그 표정은 나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OST가 뭔지도 모르던 그때, TV에서 <라스트콘서트>가 한다고 하면 TV스피커 가까운 곳에 녹음기를 갖다 대고 주위 사람들에게 검지손가락을 펴서 입술에 갖다 대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내 손가락은 빨간색 녹음 버튼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음악만 나온다 싶으면 여지 없이 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서 빨간 버튼을 꾹하고 눌렸다. 그렇게 OST를 직접 녹음 했다.
온잦 잡음과, 성우들의 느끼한 더빙 목소리 까지 같이 녹음된 그 녹음테잎을 한동안 거의 매일 끼고 살았었다.
"스텔라를 위한 협주곡" 나오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는 공책에 적어놓고 감정에 빠져 눈물을 흘리면서 혼자서 리차드가 되기도 하고, 스텔라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당연히 멋있어 보였고, 그런 좋은 영화에 흘리는 눈물이 제법 값져 보이기까지 했다.
아쉽게도 시간이 지난후 다시 만난 스텔라와 리챠드의 사랑은 나에게는 많이 퇴색되어 있었다. 내가 커서 감정이 없어진것이 아니라, 당시에 내가 본 <라스트 콘서트>가 아닌 다른 버젼의 <라스트 콘서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을 다시 들을수는 있지만 "그때"의 <라스트 콘서트>는 이제는 볼수 없게 커버린 것이다.
내가 처음 봤던 그때, 그 느낌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지만, 나의 첫번째 <라스트콘서트>는 아직까지, 아니 내 일생에서 가슴 먹먹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서 리차드와 스텔라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를 다시한번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보고 싶다.
이상 개인적인 체험이 흠뻑 녹아들어 더욱 공감이 가는,
이길남님의 귀하디 귀한(!) 리뷰 <라스트 콘서트>였습니다.
+) 칩순의 '내맘대로' 덧붙임
공부보다 영화가 좋은 걸 어떡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