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서울, 잘 몰라요. 서울 복잡해요. 서울서울쳐울쳐울T^T.

서울이 복잡한 이유가 있긴 하죠. 재개발 일변도에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점점 안착하고 있으니 ‘여기가 예전에 거긴가? 여기가 거긴가?’ 싶어 헷갈리는. <Lonely Planet>의 토니 휠러 씨도 고개가 갸우뚱 할 겁니다. 이렇게 자주 변모하는 도시라니 개정판을 매년 내야 하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항상 들어가는 항목은 재래시장일 것이어요. 무엇보다 서울시 중앙에 위치한 중구의 여러 재래시장들 말이지요.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방산시장, 평화시장 등등. 오늘은 제4회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상영관과 가장 가까운 남대문시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양 설계자 정도전이 남대문이 불타면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설이 있지만 YⅡK도, 휴거도 지나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종말론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뭐 그다지 강렬할 것도 없군요. 농담도 도참비기도 자극의 역치는 높아져만 갑니다.

상영관인 롯데시네마에비뉴엘에서 영플라자를 오른편에 두고 한국은행 방면으로 걷다가 분수대 앞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남대문 시장의 GATE 3이 나옵니다. 시장의 명물인 옥수수호떡집을 왼편에 두고 골목을 마주 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남대문시장에 와 있다!





어떤 시장은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장은 종합시장인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중구에 위치해도 동대문과 종로구 종로 쪽에 위치한 재래시장들이 전문시장이모여 있고 남대문시장이 종합시장이지요. 시장의 기원이 여직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말해 남대문시장은 시전에서, 종로와 그에 인접한 시장은 육의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도성 출입문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을 형성하게 됐다고 하는군요. 골목골목 구불구불한 동선이 나이 많은 얼굴의 주름살처럼 혼란스러운 듯 질서 정연하다면 비약입니까?

처음 남대문시장의 주요 취급품은 곡물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로 안경, 카메라, 액세서리, 일본관광객을 목표로 한 한류 상품과 인삼주 및 김 등을 다루고 있음과 비교한다면, 품목만 봐도 조선과 한국사회의 입성이 어떻게 달랐는지 한 번에 잡히는 바가 있지요.



현재와 같이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이래였으니 의외로 100년 남짓의 짧은 시간입니다. 약간 딴 얘기지만 김지하 시인은 본인의 전집에서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고조선의 신시(神市)에 빗대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획일성과 계획성 그에 따른 무시무시한 구심력을 찌르고 나갈 수 있는 보다 순선한 경제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재래시장이 해 왔던 역할에서 찾는 것이지요.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조선 역사를 실제 역사로 전위시키고, 고조선의 ‘신시神市’를 발굴하고 재해석하여 현대적인 ‘성스러운 시장’―획일적 계획주의와 무정부적 경쟁시장을 동시에 넘어서는―을 구성해 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때의 경제체제, 소위 신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제공동체의 기본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은 IMF 때 다른 곳에 비해 영향을 적게 받았어요. 왜냐하면 그곳은 마치 질긴 풀뿌리처럼 얽힌 호혜互惠와 공제共濟적인 계조직이기 때문입니다. 고조선의 신시는 호혜 시스템과 교환질서가 하나로 습합되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이것은 현 세계를 억압하고 있는 자본주의 금융시장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김지하, 정신병 치료를 위한 고대의 탐색, 한국의 지식콘텐츠 KRpia)

명절 때마다 대형 할인마트와 재래시장의 매출을 비교하는 뉴스를 보면서, 체감물가 상승률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등장하는 재래시장 상인의 인터뷰를 생각해보면 문인인 김지하가 읽어낸 재래시장은 굉장히 순진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무섭지요, 자본주의 금융시장을 뚫어낼 대안을 재래시장이 지닌 흐름 안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 게다가 ‘습합’이라는 종교학의 용어를 세속의 가장 명징한 형태인 시장을 서술하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깝고 먼 것은 다시 무엇인지.

평일 낮 시간, 예상과는 달리 흐린 날씨에도 북적북적한 시장통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중국인 관광객을 부르는 상인들의 외국어를 듣고 있는 것 역시 이곳의 특징적인 풍경입니다. 명동과 남대문시장이 일본인의 메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인삼주와 한류스타의 사진을 판매하는 상인의 말은 “그래도 한국 사람이 많죠. 7:3 정도.”


재래시장마다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업데이트가 원활하지 않은 것이 흠입니다. 네이버에 ‘남대문시장’을 검색하면 5개의 사이트가 뜹니다. 그 중 가장 활용도가 높은 것은 남대문투데이(http://www.indm.net). 품목별/건물별/구역별 검색이 가능해 지리와 운영시간이 복잡한 남대문시장을 이용하기에 매우 유용합니다.


남대문시장지식검색 바로가기 http://www.indm.net/knowledge/knowledge.php를 이용하면 남대문시장의 맛집 역시 검색 가능합니다. 4000~5000원 선의 갈치조림, 칼국수, 보리밥 등 식당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롤롤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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